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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사회심리학의 창시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대표적 저서인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수천 년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에 있어 가장 큰 목표중의 하나인 ‘자유’에 대해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일단 이 책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하여 전체적인 논리 흐름의 바탕인 심리학에 있어서의 자유의 의미와 사회심리학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그러한 전제조건을 바탕으로 선사시대, 중세시대, 르네상스시대를 거쳐 파시즘과 자유민주주의에 있어, 각 시대의 개인이 가지고 있던 자유에 대한 심리 상태를 고찰하고, 그 심리상태가 다시 사회에 미쳤던 영향을 고찰한다.


1.심리학과 자유 - 인간의 숙명! 도피할 것 인가, 자유로워 질 것인가?

 과연 자유라는 개념은 인간에게 있어 숙명인가? 내가 이해한 바로는 프롬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태어나 어머니와 자신을 연결해 주던 탯줄을 끊고, 그 후로도 오랜 기간 동안 어머니의 무조건적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다. 그 때 까지 인간은 ‘나’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 한다. 그는 아직 어머니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그에게 있어 어머니의 품은 곧 세계이다. 하지만 육체적, 정신적 발달과 함께 세계에 대한 인식의 한계가 커지면서 그는 ‘나’라는 존재를 발견한다. 이러한 발견은 그에게 있어 혼란스러운 것이다. 종전에 세계의 일부였던 ‘나’는 없어지고 거대하고 거부할 수 없는 세상 앞에 초라한 먼지와 같은 고독한 ‘나’를 발견한다. 과연 그는 이 혼란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해답은 두 가지 이다.

 첫 번째 방법은 ‘수동적 자유(~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 즉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되돌아가 다시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 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이러한 해결 방법은 절대적으로 실현 불가능 하다. 결국 그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식으로든(사디즘, 마조히즘,...) 견딜 수 없는 고독감을 자아내는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완전히 자기 자신을 버리고 세계에 굴복하여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 이다. 하지만 이러한 첫 번째 방법, 즉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그의 고독감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도피한 개인은 의식적으로는 고독하지 않다고 느낄 줄 몰라도, 무의식중에서 조차 잃어버린 자아에 대한 욕망을 완전히 지워낼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은 ‘적극적 자유(~에 대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 즉 내적인 발전을 통해 독립된 나로서 존재함과 동시에 세계와 생산적인 관계(창조적인 직업적, 예술적 활동)를 맺음으로써 고독감을 없애는 것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첫 번째 방법에 비해 영속적이며 건설적이다. 바로 ‘나’를 희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나타난 유아기에서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나’의 발견, 즉 자유에 대한 인식은 모든 인간에 있어 공통적 숙명이다. 또한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가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세력에 반대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쪽으로 진행된 것을 볼 때 인간에게, 그리고 그 심리에 있어 자유란 숙명적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2.사회심리학의 전제 - 개인 심리와 사회의 상호작용

 어떤 시대에 있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성격구조가 그 시대의 사회적 환경에 의해 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든가, 어떤 시대를 지배하는 사회구조나 이념이 개인의 심리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에 프롬은 모두 반대하고 있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둘 사이의 관계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회든 개인이라는 구성요소로 이루어지기에 개인에게 나타나는 성격구조는 사회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프롬의 입장은 무엇인가? 내가 이해한 바대로 요약하자면 “독립적이면서도 상호간에 영향을 주는 촉진제”라고 말하고 싶다.

 인류 역사에 있어 큰 영향을 주었던 신교의 정신이나 자본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파시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사상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떤 특정한 이유로 생겨난 이러한 사상들이 그 사상을 지지하는 개인들의 심리적 욕구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사상을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함으로서 얻어지는 심리적 만족은 그러한 심리를 더욱 강화시켜 그 사상이 더욱 지배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앞으로 이 책에서 논의할 사항들은 모두 이러한 전제를 기초로 하고 있다.

3.선사시대와 중세의 인간

 선사시대의 인간을 개인의 발달과정에 비하자면 유아기라 할 수 있다. 그는 아직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며 자연의 힘에 복종하고 자연에 기대어 살아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토테미즘이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중세의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되었으나 그는 아직 ‘그’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교회의 권위를 받들고 장원의 구성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을 하며, 주어진 장소에서만 생활하고,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생활한다. 그에게 능동적 선택권은 없다. 그는 그가 속한 사회의 품에서 수동적 자유를 추구하며 살고 있다.

4.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렇게 자신이 속하는 계급 속에서 소극적 자유에 만족하던 사람들에게 큰 변화가 생기게 된다. 바로 상업을 통하여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 이른바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하게 된 것 이다. 이는 곧 누구나 자기의 능력만 있으면 타고난 계급을 벗어나 더 높은 계급으로 계급상승을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프롬은 이러한 진취적인 도전 정신은 일부 독점 자본가들의 전유물이라고 지적한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소자본 상인들, 즉 중간 계급의 사람들은 오히려 상대적 허탈감을 느끼며, 거대한 자본과 그들로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시장의 법칙 앞에 무력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또한 프롬은 여기서 중간 계급의 심리에 대한 또 다른 면을 지적한다. 그 것은 바로 자기보다 가난한 하층 계급 사람들에 대한 경멸의 감정이다.

 이상의 논의 들을 바탕으로 프롬은 중간 계급의 성격구조를 ‘권위주의적’이라고 말 하고 있다. 즉, 자신보다 강한 무언가의 권위에 복종하고자 하는 동시에, 자기보다 약한 무언가를 경멸하고 지배하려는 욕구가 중산 계급의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당시 사회적으로는 ‘부패한 교회의 권위에 대한 개혁’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많은 사람들에게 지배적인 힘을 행사한 신교의 사상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밑거름은 심리적으로는 바로 이런 중산층 사람의 성격 구조였음을 프롬은 말하고 있다. 복종할 강한 권위를 잃어버린 중간 계급의 사람들에게, 전지전능한 신의 권위를 제시하는 신교의 가르침은 그들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던 것이다. (물론 프롬은 기독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시로서는 부패했던 교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구원을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신앙적 경험으로 재정립하여, 교회에게 빼앗겼던 구원을 개인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중세말의 사회적, 심리적 변화가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기독교의 발흥 뿐 만이 아니라, 이러한 청교도들의 성격구조가 자본주의의 발달에 큰 동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신교에 있어 절제, 검약하는 생활 자체가 구원에 대한 신의 확약이기 때문에 그들의 몸에 벤 절제와 검약의 정신은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그들의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복종이라는 심리는, 거대한 시장의 법칙에도 적용되어, 이 또한 자본주의의 발달에 밑거름이 된다.

5.히틀러의 전체주의

 프롬은 인류 역사에 있어 돌이킬 수 없는 큰 영향을 준 히틀러의 등장 역시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비록 히틀러의 나치당에 의해 흡수당했으나 잠시 나마 공산당이 득세했던 상황에서, 그리고 때를 같이하여 찾아왔던 경제적 공황에 의해, 당시 독일의 중산계급은 자신의 위치를 위협받고 있었다. 그들이 절대적으로 따르고 믿었던 공화국의 몰락과 노동 혁명의 성공으로 인해 그들은 그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던 권위를 잃게 된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히틀러의 전체주의이다. 히틀러(괴벨스)의 전체주의에서, 개인은 오로지 전체, 즉 무한한 권위를 가진 누군가에 복종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전체주의의 사상은 복종할 권위를 잃어버린 중산계급의 사람들에게 큰 호소력을 가지게 된다. 또한 전통적으로 노동자 계급에게 향하고 있던 지배의 욕구는 다른 인종에게 향하게 된다.

 한마디로 히틀러는 중산계급의 권위주의적 성격구조에 호소하여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고 프롬은 말하고 있다.

6.자유민주주의

 이러한 히틀러의 전체주의가 패배로서 막을 내리고, 흔히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물론 지금까지 인류의 자유를 구속해오던 많은 외적인 조건들이 사라졌고, 많은 사람들이 진정 자기 의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프롬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지금 당신은 자기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아니면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사회적 암시(방송, 광고, 사회적 통념, 각종 권위, ,...)에 의해 조종되는 기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당신이 스스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양심이라는 것은 진정 자신의 것 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양심이란 누군가의 조작과 암시에 의해 만들어져, 당신을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종하고 있는 것 인가?

 당신은 이런 나의 의심을 모두 부정할 수 있는가?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우리가 지켜내야 할 자유와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당신의 생각 속에, 우리 사회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것 이다.

 하지만 좌절하진 말라.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란 항상 수동적인 자유일까? 지금 까지 내가 설명한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듯, 남을 지배하려는 사디즘이나 남에게 지배당하고자 하는 마조히즘만이 인간의 고독과 무력감에 대한 해답인가?

 그렇지 않다. 개인의 내면적 발전과 개인과 사회의 분리에서 오는 고독감의 해소라는 두 가지 과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서 우리는 새로운 사회체제를 계속 연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앞으로 당신들의 과제이다.

---------------------------------------------------나의 어리석은 생각~

 사실 말하자면 나의 얕은 지식으로는 프롬의 이론에 대한 반박은 커녕 그의 거대한 이론적  체계를 이해하는 것 자체도 힘들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그가 논증한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자유의 역사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그가 이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제시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 인지는 알 듯 하다.

 그 것은 바로 겉으로는 자유롭다고 느끼고 그렇게 행동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잃어버린 현대인에 대한 충고이다. 흔히 ‘현대인’이라고 불리는 내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을 볼 때, 그가 우리에게 주는 충고는 절대 지나치게 이론적인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봄으로써 생기는 착시현상이 아니다.

 나를 포함하여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볼 때, ‘과연 그들이 그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내면적 발전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나는 ‘아니요’라고 답할 것 이다. 우리가 흔히 추구하는 가치들(돈, 명예, 성공...)이 과연 우리 스스로가 진정 원하는 내면으로부터의 바램일까?

 그렇다면 많은 돈을 벌고, 큰 집을 사고, 크게 성공하고, 좀 더 유명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혹은 이미 어느 정도 그런 것들을 이루어낸 사람들은 과연 행복한가? 다시 한 번 내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자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 것은 곧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들이 자기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본연의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자아의 실현’이라는 적극적 자유의 상실은 비단 이러한 ‘가치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가치관이라는 개념 보다 하위의 것이겠지만, 우리가 흔히 배우고 따르고 생각의 준거로 삼는 ‘지식’과 그 것을 준거로 하는 ‘사고’에 있어서도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상실하고 있다.

 한마디로 ‘선생님’으로 떠받드는 누군가가 제시하는 지식을 아무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선생님’이 의도하는 대로 사고하는 것 이다. 그 지식을 습득하고, 습득한 지식을 기반으로 사고하는 모든 과정에 있어 ‘나’는 없다. 그의 뇌는 이미 그의 것이 아니다. 그는 권위에 복종하고자 하는 욕구, 혹은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자 하는 욕구를 담보로 그의 사고 능력을 ‘선생님’께 저당 잡힌 것이다.

 딱 집어서 누구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일찍이 그들의 사고능력을 타인에게 저당 잡혀서 일곱 살 꼬마라도 잠깐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 저 무능력한 허위 지식인들로 인해 이 나라가 이렇게 시끄러운 것을 보면, 프롬의 충고가 참으로 고맙게 느껴지고, 이 책을 읽기를 참 잘 했단 생각이 든다.

 프롬의 이론으로 인하여 나의 미천한 지식과 사고력이 약간이라도 더 배양되었다는 점.

 한 때, 그리고 요즘 들어 심한 권태에 빠져있던 나에게 ‘내 마음의 외침’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

 앞으로 일상이 힘들고 빡빡해 지겠지만, ‘내 마음의 외침’에 귀 기울이며,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조금씩 정진해 나가자는 의지를 재확인한 점.

 내 머리는 남에게 저당 잡히지 말자고 다짐한 점.

 책 읽기를 좋아하거나, 프롬의 이론으로 머리를 쉴 새 없이 굴려서 자기 두뇌의 회전율을 체크해보고 싶으시거나, 근래에 심각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분이라면 한번쯤은 권하고 싶은 책이라는 점. 잇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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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을 때 인부들이 벽돌까지 직접 만들어 쓰지는 않는다.
심지어 요즘엔 조립식 건물들도 많다.

프로그램을 짤 때도 이미 만들어진 라이브러리나
컴포넌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싸구려 자제를 쓰면 집이 무너지듯이
라이브러리 역시 성능적인 면, 안정성 면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검증된 것을 사용해야 한다.

좋은 라이브러리가 많지만 그 중에 몇개를 고르라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C++ STL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STL(Standard Template Library)에 대한 튜토리얼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정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template을 이용해서 높은 재사용성과 유연성을 제공하면서도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성능의 희생을 최소화한 라이브러리가 바로 STL이다.


물론 남이 만든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는
개발자가 있을지는 몰라도, 솔직히 말하자면
ARRAY, LIST, STACK, QUEUE... 같은 뻔한 데이터 구조나
이진 탐색 같은 알고리즘을 직접 구현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엔 삽질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STL을 사용하려면 C++을 상세히 알고 있어야 하고,
또한 STL자체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야할 것 들이 많다.
STL의 구조, 동작 방법, 사용상의 유의점 등등...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어렴풋하게 알고있는 상태에서 STL을 사용하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요, 심한 경우엔 STL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프로그램의 성능을 잡아먹거나, 신출귀몰한 런타임 오류를 보게 될 것이다).


고로... STL이 제공하는 장점들을 실제 개발에 활용하고자 한다면,
이 책은 꼭 한번 읽어봄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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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쯤 전인가...
'전병선'이라는 분이 쓴 책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집짓는 일에 비유한 것이 생각난다.
딱 적당한 비유가 아닌가 한다.

좋은 집을 짓는데 필요한 능력은 연장을 다루는 것 그 이상이다.
망치와 못을 다룰 줄 안다면 집에서 기르는 개를 키울 개집이나
간단한 책꽃이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커다란 아파트를 짓게 한다면 어떨까?

지을 수도 없겠지만 혹여 짓는다고 해도 금새 폭삭 무너질 것이다.
그 사람에겐 전체를 볼 줄 아는 안목과 ,
부분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어찌어찌하여 언어만 쓸 줄 안다고 해서
좋은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백줄 정도의 프로그램은 그럭저럭 짠다고 쳐도
그 이상의 커다란 시스템을 제대로 짤 수 있을까?
짤 수는 있을 것이다. 허접하게...

적어도 수십개 정도는 되는 구성 요소들이
서로 서로 거미줄 처럼 얽혀 있을 것이다.
거미줄을 건드리면 진동이 퍼져나가듯
한 부분을 고치면 다른 부분 들도 몽땅 뜯어 고쳐야 한다.
결국 거미집을 수리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다 뜯어내고 아예 새로 짓는 수 밖에..

Design Patterns...
말그대로 대표적인 디자인 패턴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이 패턴들의 목적은?
책의 부제가 말해주듯 'Reuse'이다.

패턴이 reusable하다는 얘기는 각각의 패턴을 이용하여 구현된
sub-system도 reusable하다는 얘기다.
거미줄 처럼 유기적으로 잘 작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reusable한 sub-system을 만든다는 얘기다.

또한 이렇게 구현된 sub-system들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것도
패턴을 이용하면 가능한 경우가 있다.
이 책의 관점에서 보자면
system= reusable patterns of reusable patterns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 들은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단순 코더가 아닌 진정한 architect가 되고자 한다면
이 책은 필독서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책에서 소개하는 패턴들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설계상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또 독자의 안목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데도...

영어 원서라서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짬짬이 찔끔찔끔 읽었으니...
하지만 충분히 그 정도의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한마디로 객체지향 언어를 능숙히 익힌 모든 이들에게 강추!!! 라는 거다.
 

Posted by OnTheWh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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